조선의 4대 임금 세종대왕은 정치와 문화뿐 아니라 과학에도 비범한 관심을 보인 군주였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세종대의 하늘관측을 중심으로, 세종이 어떤 방식으로 별과 태양을 관찰했는지를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1. 세종대왕이 천문학에 주목한 이유

- 세종대왕이 하늘을 연구한 이유는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었습니다.
- 천문 현상은 곧 왕의 권위와 국가 질서의 상징이었기 때문입니다.
- 그는 중국 역법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우리 땅의 위도와 계절에 맞는 새로운 역법을 만드려고 했습니다.
- 이 목표 아래 세종은 천문학자들을 불러 모으고, 하늘의 움직임을 정밀하게 관측할 수 있는 기구 제작을 명했습니다.
- 이 시기에 발전한 세종대왕의 천문학은 실용과 과학이 결합된, 조선의 대표 과학혁명이라 할 수 있습니다.
2. 세종대의 하늘관측을 위한 기구들
세종은 왕궁 안팎에 여러 천문기구를 설치했습니다.
(1) 간의대(簡儀臺)

- 세종 14년, 경복궁 경회루 북쪽에 거대한 관측대가 세워졌습니다.
- 이곳에서 학자들은 해와 별의 위치를 잰 후, 이를 역법에 반영했습니다.
(2) 규표(圭表)

- 태양의 그림자를 통해 계절과 시간을 알아내는 장치로, 당시 농사 달력 제작에 큰 역할을 했습니다.
(3) 앙부일구와 현주일구

- 우리나라 최초의 공중 해시계로, 일반 백성들도 시간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4) 일성정시의(日星定時儀)

- 낮에는 해의 고도, 밤에는 별의 움직임을 이용해 하루 시간을 정확히 나누는 정밀 관측기구였습니다.
- 이처럼 세종대의 하늘관측은 단순히 궁중 과학자들의 연구를 넘어, 백성의 삶과 밀접히 연결된 실용 과학의 실천이었습니다.
3. 세종대왕의 하늘관측 방법

- 세종과 천문학자들은 관측을 매우 체계적으로 수행했습니다.
(1) 극축을 기준으로 한 별의 각도 측정
- 관측 장비를 북극성 방향으로 고정하고, 별의 이동 각도를 일정 간격으로 기록했습니다.
- 이는 현대 천문학의 적도좌표계 방식과 유사합니다.
(2) 태양의 남중 고도 측정
- 태양이 가장 높이 뜨는 시점인 남중 때의 고도를 재어 계절 변화를 확인했습니다.
- 이를 통해 위도를 계산하고 절기와 달력 제작에 활용했습니다.
(3) 낮과 밤을 아우르는 시간 계산
- 세종은 “밤의 별빛도 낮의 해만큼 중요하다”라고 보았습니다.
- 그래서 일성정시의를 만들어 낮에는 태양, 밤에는 별을 관측해 하루 24시간을 정밀하게 나누었습니다.
- 이 방식은 세종대왕의 천문학을 시간 측정의 과학으로 발전시킨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4. 세종대의 천문학이 남긴 업적

- 세종은 단순히 관측에 그치지 않고, 그 결과를 학문적으로 체계화했습니다.
- 대표적인 업적은 칠정산(七政算)입니다.
- 이는 해·달·수성·금성·화성·목성·토성의 운행을 계산한 역법서로, 우리나라 최초의 자주적 역법이었습니다.
- 또한 1437년 세종대에는 ‘객성(손님별)’이라 불린 신성 폭발 현상이 관측되었는데, 이는 동아시아 천문학 기록 중 가장 정확한 관측으로 평가됩니다.
- 이런 사실은 세종대의 하늘관측이 단순한 전통 지식이 아니라 과학적 기록의 시작이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5. 세종대왕의 천문학이 주는 오늘의 의미
세종대왕의 천문학은 인간의 눈과 손으로 이룬 놀라운 성취입니다.
그는 망원경도, 전자장비도 없이 별의 위치를 측정하고, 계절의 흐름을 수학으로 정리했습니다.
무엇보다 하늘의 질서를 백성의 삶과 연결하려 한 그의 마음은 오늘날 과학이 지향해야 할 방향을 알려줍니다.
세종대의 하늘관측은 조선의 밤하늘을 넘어, ‘사람을 위한 과학’이라는 이상을 실현한 위대한 유산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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